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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 : 반짝이는 설탕 옷 속에 숨겨진 달콤한 중국 역사

by J&P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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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후루

틱톡(TikTok)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 피드를 넘기다 보면 반짝이는 붉은 과일 꼬치에 눈길을 빼앗긴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한입 베어 물면 '와삭!'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과즙. 한때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셜 미디어를 강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탕후루(糖葫芦) '입니다. 눈으로 즐겁고 귀로도 즐거운 이 간식은 특히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탕후루는 신선한 과일을 긴 꼬치에 꿰어 끓인 설탕 시럽을 얇게 입힌 뒤 빠르게 굳혀 만든 중국 전통 간식입니다. 겉은 유리처럼 단단하고 바삭하며 달콤하지만 속은 과일 본연의 부드러움과 새콤함을 간직하고 있어 매력적인 식감과 맛의 대비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모습과 중독적인 맛 뒤에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역사와 문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탕후루는 단순한 유행 간식이 아니라 중국 황실 이야기와 전통 의학, 그리고 서민들의 삶과 축제가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최근의 세계적인 유행은 종종 이러한 깊은 문화적 맥락을 간과하거나 심지어 그 기원을 잘못 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 속에 담긴 비밀: 왜 '설탕 호리병박'일까?

탕후루의 매력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그 이름에서 시작됩니다. 중국어로 '탕후루(糖葫芦)'는 '설탕'을 뜻하는 '탕(糖)'과 '호리병박' 또는 '박'을 의미하는 '후루(葫芦)'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왜 하필 '설탕 호리병박'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과일을 꼬치에 여러 개 꿴 모습이 마치 잘록한 허리를 가진 호리병박의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과거 탕후루를 만들 때 호리병박 모양의 그릇에 꿀물이나 설탕물을 담아 끓여 과일을 찍어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름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베이징 등 북방 지역에서는 투명하고 단단한 설탕 옷을 강조하여 '얼음 설탕 호리병박'이라는 뜻의 '빙탕후루(冰糖葫芦)'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톈진에서는 '탕둔얼(糖墩儿)', 안후이성 펑양에서는 '탕치우(糖球)', 산둥성에서는 '탕잔얼(糖蘸儿)' 등 지역 방언에 따라 다양한 애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름 자체는 탕후루의 시각적인 형태와 달콤한 맛이라는 핵심 특징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설탕 호리병박'이라는 이름은 기억하기 쉬우면서도 그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다양한 지역 명칭의 존재는 탕후루가 단순히 베이징의 명물이 아니라 중국 북부 여러 지역의 문화와 방언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간식임을 시사합니다.  

 

 

황제의 총애와 의원의 처방: 황귀비 이야기

탕후루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남송(南宋) 시대 황귀비에 얽힌 전설입니다. 이는 탕후루의 유래에 관한 가장 흥미롭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약 800년 전인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야기는 남송의 황제 광종(光宗)이 총애하던 황귀비(黃貴妃)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하면서 시작됩니다. 황궁의 모든 의원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귀비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고, 애가 탄 황제는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전국에서 명의를 구했습니다. 이때 한 의원이 나타나 황귀비를 진맥하고는 뜻밖의 처방을 내립니다. 바로 '산사나무 열매(hawthorn berry)'를 설탕과 함께 달여 식전에 5~10개씩 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황귀비는 이 처방대로 간식을 먹은 후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고 이 '약'은 곧 민간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탕후루의 원형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산사나무 열매(山楂, shānzhā)는 실제로 중국 전통 의학에서 소화를 돕는 약재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는 탕후루가 단순한 간식을 넘어 '약효가 있는 음식'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둘째, 송나라 시대에는 비록 귀했지만 설탕이 존재했으며, 스리랑카 등지에서 수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셋째, 광종 사후 약 50년 뒤 항저우의 풍경을 묘사한 기록에 탕후루와 유사한 음식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물론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에서 과일 보존을 위해 시럽을 입힌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이나 명(明)나라 때 기원했다는 설 등 다른 주장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황귀비 이야기는 황실의 권위, 건강 회복이라는 긍정적 서사, 그리고 실제 약재로 쓰이는 산사나무 열매라는 구체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가장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기원 설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탕후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전승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산사나무 열매의 실제 약효 는 단순한 맛을 넘어 건강상의 이점까지 기대하게 만들며 탕후루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황실의 간식에서 길거리 명물로: 탕후루의 대중화 여정

중국 탕후루

황귀비의 전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송나라 시대의 탕후루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길거리 간식과는 거리가 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설탕은 매우 귀하고 값비싼 식재료였기 때문에 황실이나 귀족층이 즐기는 고급 간식 또는 약용 음식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탕후루는 언제, 어떻게 황궁의 담장을 넘어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탕 생산량이 늘고 가격이 점차 저렴해짐에 따라 탕후루 역시 점차 대중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중국 북부 지역, 그중에서도 베이징과 톈진에서 탕후루는 대표적인 간식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청(淸)나라 시대의 기록에는 이미 베이징의 유명한 간식으로 탕후루가 언급될 정도로 그 대중화는 상당히 오래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거리 노점상들이 긴 대나무 꼬치에 반짝이는 탕후루를 꽂아 파는 모습은 중국 북부 도시의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탕후루가 특히 '겨울 간식'으로 유명해진 데에는 실용적인 이유와 문화적인 배경이 모두 작용했습니다. 추운 날씨는 뜨거운 설탕 시럽을 빠르게 식혀 단단하고 바삭한 코팅을 만드는 데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더운 날씨에는 설탕 코팅이 녹아 끈적거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적인 탕후루의 주재료인 산사나무 열매가 늦가을에 수확되어 겨울철에 가장 신선하게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중국의 주요 겨울 축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도 탕후루를 겨울의 상징적인 간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탕후루의 역사는 중국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설탕의 보급 확대는 탕후루가 귀족의 별미에서 서민의 간식으로 내려오는 '민주화' 과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북부 중국의 기후와 계절적 리듬, 그리고 축제 문화와 결합하면서 탕후루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특정 계절과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는 탕후루가 일 년 내내 즐길 수 있는 다른 간식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하고 강력한 문화적 생명력을 갖게 된 배경입니다.  

 

 

 

원조의 맛: 새콤달콤 산사 탕후루

산사열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화려한 과일 탕후루 이전에, 탕후루의 원형이자 근본은 바로 '산사나무 열매(山楂, shānzhā)'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작고 동글동글한 붉은색 또는 노란색의 이 열매는 게잡이 사과(crab apple)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특유의 강한 신맛과 떫은맛이 특징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산사 열매는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어 오랫동안 한약재로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전통 탕후루의 매력은 바로 이 산사 열매의 강한 신맛과 설탕 코팅의 달콤함이 이루는 절묘한 조화에 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단맛이 강한 과일로 만들었다면 설탕 코팅까지 더해져 쉽게 질릴 수 있었겠지만 산사의 톡 쏘는 신맛은 설탕의 단맛을 중화시키며 맛의 균형을 잡아주어 계속해서 손이 가게 만드는 매력을 선사했습니다.  

 

전통적인 탕후루 제조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산사 열매를 긴 대나무 꼬치에 꿰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과일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설탕 코팅이 제대로 굳지 않기 때문에 물기 제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다음은 설탕 시럽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냄비에 설탕과 물을 보통 2:1 비율로 넣고 젓지 않은 채로 중불 또는 중약불에서 끓입니다. 시럽이 끓어오르면서 처음에는 탁했다가 점차 투명해지고, 온도가 섭씨 150도 정도의 '하드 크랙(hard crack)' 단계에 도달하면 불을 끕니다. 이 온도는 시럽이 식었을 때 유리처럼 단단하고 바삭하게 굳는 상태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는 온도계 없이 찬물에 시럽을 떨어뜨려 굳는 정도로 온도를 가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시럽에 산사 꼬치를 재빨리 담가 얇고 균일하게 코팅한 후 즉시 차갑게 식혀 설탕 옷을 굳힙니다.  

 

탕후루의 시작이 산사나무 열매였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독특한 신맛은 설탕 코팅의 단맛과 완벽한 균형을 이루도록 의도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탕을 특정 온도까지 정확하게 끓여 유리처럼 깨지는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탕후루만의 고유한 매력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새콤달콤한 맛과 바삭한 식감의 조화야말로 수 세기 동안 탕후루가 사랑받아 온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록달록 변신은 무죄: 현대 탕후루의 진화

탕후루

전통적으로 산사나무 열매가 탕후루의 주인공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탕후루는 훨씬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설탕 옷을 입고 반짝이며 유혹합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딸기, 샤인머스캣, 거봉, 사파이어 포도, 아도라 포도, 애플 포도 등 다양한 종류의 포도부터 시작해서 귤, 키위, 파인애플, 블루베리, 체리, 블랙베리, 망고, 금귤, 방울토마토, 심지어 레몬이나 복숭아까지, 그 종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딸기와 샤인머스캣 탕후루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우선,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일 년 내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맛과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트렌드 와 시각적인 매력을 중시하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 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알록달록한 과일 탕후루는 사진이나 짧은 영상으로 담기에 완벽한 피사체였고, 이는 탕후루의 바이럴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더불어 산사나무 열매가 흔하지 않은 해외 시장으로 탕후루가 퍼져나가면서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과일로 대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맛의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산사의 신맛보다는 달콤한 과일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입맛 변화 도 이러한 다양화를 부추겼습니다.  

 

탕후루의 현대적인 변신은 그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특정 계절에 구할 수 있는 산사나무 열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다양한 과일을 포용함으로써, 탕후루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과일 트렌드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디저트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탕후루가 젊은 세대와 국제적인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최근의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신 과정에서 산사 특유의 새콤달콤한 균형감 대신 일반적인 설탕 코팅 과일의 형태로 변모한 측면도 있지만, 바로 이 적응력 덕분에 탕후루는 과거의 간식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트렌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달콤함에 담긴 염원: 중국 문화 속 탕후루

탕후루는 단순히 맛있는 간식을 넘어 중국, 특히 북부 지역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과 축제의 계절에 주로 등장하는 탕후루에는 행복과 희망에 대한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상징성은 '행복'과 '재회(단란함)'입니다. 전통적인 탕후루의 붉은색(산사 열매)과 둥근 모양은 중국 문화에서 길운과 복, 그리고 가족의 화합과 원만함을 상징하는 요소들과 일치합니다. 특히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가장 큰 명절인 춘절(春节, 중국 설)이 다가올 때 탕후루를 먹는 것은 새해의 행복과 가족의 단란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탕후루의 달콤한 맛 자체도 다가오는 해가 더욱 '달콤하고' 풍요롭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합니다.  

 

또한 많은 중국인에게 탕후루는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겨울철 길거리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탕후루를 만들던 노점상의 모습, 친구들과 함께 탕후루를 나눠 먹던 기억 등은 세대를 넘어 공유되는 따뜻한 감성입니다.  

 

이처럼 탕후루는 중국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겨울 간식이자 때로는 중국 전체를 상징하는 국민 간식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탕후루가 단순한 디저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처럼 가족, 축제, 행복,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염원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탕후루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오랫동안 중국 문화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소비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겨울 축제 기간에 탕후루를 먹는 행위는 단순한 미각적 즐거움을 넘어, 행복과 단란함, 그리고 달콤한 미래를 기원하는 문화적 의례와도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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